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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사의 혁명..갑골문(2011.05.09)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시 : 2014-02-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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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5054179

중국 고대사의 혁명..갑골문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오늘날, 중국의 문자를 연구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동한(東漢)의 허신(許愼)이 지은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신성불가침의 경전으로 보지 않는다. 갑골문자가 있었고 그것의 시대는 설문해자보다 1400~1500년이나 앞서기 때문이다." 

중국의 저명한 갑골학자 호후선(胡厚宣. 1911~1995)은 1951년 출판사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 낸 '오십년 갑골문 발견의 총결'(五十年甲骨文發現的總結)이란 단행본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동작빈(董作賓. 1895~1963)과 더불어 초기 은허(殷墟) 유적 발굴에 종사한 고고학자 이제(李濟. 1896~1979) 또한 "(갑골문이 다량으로 발굴된) 이때에 이르러 1천여 년 이상 중국의 지식계를 짓누르고 있던 설문은 이미 완전히 해체되고 있었다"고 단언했다. 

갑골문은 종래 한자학의 출발이자 전범으로 간주된 설문해자를 그 자리에서 밀어낸 문자다.

상(商)나라가 지금의 중국 허난성 안양시에 있던 은(殷)이라는 곳에 도읍한 이른바 은상(殷商)시대의 역사는 종래에는 전설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했지만 1899년 이래 그 도읍지에서 무수한 갑골문 자료가 출토됨으로써 전설의 영역을 박차고 나왔다. 

한자학 전공인 하영삼(河永三) 경성대 중문과 교수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학술명저번역총서(동양편)의 하나로 최근 전 5권으로 완역한 '갑골학 일백년'(소명출판)은 갑골문 발견 100년이 된 1999년, 왕우신(王宇信)을 비롯한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진이 정리한 갑골학(甲骨學) 연구 100년의 궤적을 정리한 방대한 연구서다. 

지금은 중국 고대사 연구 그 자체가 갑골학이라 일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가 된 갑골문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자 혁명으로까지 평가되지만 애초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갑골문의 정체가 드러난 것은 1899년이지만, 그 정확한 출토지가 은허의 소둔촌(小屯村)으로 밝혀진 것은 1908년, 갑골 4대가(大家) 중 가장 연로한 나진옥(羅振玉)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그를 계기로 갑골학 붐이 일고, 1928년에는 동작빈이 이끄는 중국 중앙연구원 역사어언(語言)연구소의 발굴조사팀이 소둔촌 발굴을 마침내 시작했지만 여전히 갑골문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대 박학의 대명사인 장태염(章太炎. 1868~1936)은 "그것(갑골문)을 믿는 사람들은 아마도 값을 부풀려 파는 장사 나부랭이들일 것이다. 국가도 내다 팔 수 있는데 문자라고 불가능할까"라고 비판할 정도였다. 

하지만 갑골문은 나진옥과 왕국유(王國維), 동작빈과 곽말약(郭沫若)을 거쳐 한자의 뿌리가 되는 문자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를 고리로 중국 상ㆍ주(商周)시대 연구는 활기를 띠었다. 

이번 '갑골학 일백년'은 갑골학의 역사를 시기별로 나누어 그 궤적을 정리하는 한편, 그것이 중국 고대사 연구나 사회환경 변화에 초래한 양상들을 다각도로 분석, 정리했다. 

갑골문 발견이 초래한 사건 중 하나로 중국에 비로소 문화재보호법이 태동한 일을 들 수 있다. 

책에 의하면 중국의 문화재보호법은 민국 18년(1929), 은허 발굴에 관여한 고고학자들이 주창해 이듬해 6월 국민당 정부가 채택한 고대기물보호법(古物保護法)에 뿌리를 둔다. 당시 고고학자들은 은허 유적 보호를 위해 이런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나아가 이 법을 발판으로 민국 24년(1935) 3월에는 국민당 정부가 중앙연구원에 은허 발굴을 허가하는 최초의 '비준서'를 발급함으로써 이후 이런 허가가 없는 발굴은 위법으로 간주됐다. 다른 모든 발굴이 '도굴'이 된 것은 바로 은허 유적 발굴과 갑골문 발견이 가져온 일대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 '갑골학 일백년'은 중국의 갑골학 연구를 비중있게 다루면서도 일본을 비롯한 외국의 관련 연구도 비교적 공평하게 다루려 했다. 

한국의 연구자 중에서는 뼈로 점을 치는 복골(卜骨)의 전통이 중국에만 그치지 않고 고대 한반도에도 있었음을 증명한 선문대 이형구 교수의 연구성과를 대단히 높이 평가해 주목을 끈다. 

각권 359~472쪽, 권당 2만5천~3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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